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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권익정보제공 활동가 작성일22-09-22 00:00 조회45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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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긴 시간 동안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왔다.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급여, 교육급여를 모두 받았다. 지금은 의료급여와 주거급여를 받고 있다.

수입이 없고 경제적으로 힘든 시기에 있었을 때, 기초생활수급을 받을 수 있어서 지금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생계급여를 받지 못했다면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아졌을 것이고, 의료급여를 받지 못했다면 정신과에 마음 편히 갈 수 없었을 것이고, 주거급여를 받지 못했다면 월세방을 여기저기 전전했을 것이고, 교육급여를 받지 못했다면 고등학교조차 마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러한 고초는 비수급 빈곤층 당사자들은 현재진행형으로 겪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온 나날이 좋다고만 볼 수는 없다. 몇몇 사람들은 기초생활수급자를 ‘기생수’라고 부르면서, 국가의 세금을 좀먹는 존재 취급을 한다.

수급자 아이들이 일식집에 가면 부정수급이라고 비난하고, 임대아파트 거주민들을 ‘휴거’라면서 비하한다. 최근에도 기초생활수급자가 지원금으로 아이돌 앨범을 사는 것이 옳은지 토론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에서 기초생활수급자는 경제적으로도 극빈층일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멸시를 받고 있다. 수급자 증명서는 특히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낙인으로 다가온다.

나를 더욱 힘들게 한 것은 미등록 장애인 수급자를 대하는 정부의 태도였다.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도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근로능력평가’를 받아야 한다. 근로능력평가는 장애판정을 담당하는 국민연금공단에서 시행하는 평가로, 수급자의 근로능력을 평가해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활이나 노동에 참여하게 하고, 근로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조건 없이 생계급여를 지급한다. 나에게 근로능력평가는 수치 그 자체였다.

근로능력평가는 의학적 평가와 활동능력평가로 이루어진다. 의학적 평가는 주치의의 진단서와 진료기록지를 첨부하여 공단 의사의 평가를 받는다. 의학적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등급인 1-2단계를 받으면 활동능력평가를 받는다. 활동능력평가는 공단 직원이 대상자를 면담하여 대상자가 근로능력이 있는지를 점수화하여 평가한다.

근로능력평가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근로능력평가의 전 과정은 철저하게 비공개되며, 진단서 역시 (병원마다 다르지만) 간인(서류봉투 입구에 도장을 찍는 것)과 투명 테이프 처리를 하여 대상자가 열람하지 못하게 한다. 장애등록도 그렇지만 근로능력평가 역시 투명하지 않다.

또한 그 기준이 과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지도 의심스럽다. 2012년, 기초생활수급자였던 4급 장애인 최인기 씨는 근로능력평가에서 근로능력 ‘있음’ 판정을 받고 취업하였다. 그는 무리하게 일하다 쓰러져 세상을 떠났다. 만일 근로능려평가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졌다면 최인기 씨는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받았을 것이고, 무리하게 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근로능력평가의 활동능력평가 기준. ⓒ조미정
▲근로능력평가의 활동능력평가 기준. ⓒ조미정
근로능력평가는 당사자에게 수치심을 준다. 의학적 평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활동능력평가 기준이 의학적인 관점에서 근로능력을 평가하고 있다. 사지가 기능을 하는 상태라고 하더라도 대상자는 “팔을 얼마나 뻗으실 수 있습니까?”, “걸으실 수 있습니까?”라는 질문을 들어야 한다.

활동능력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근로능력 없음 판정을 받으려면 몸을 움직이기 어렵고, 통원과 약 복용에 어려움이 있고, 자기관리에 문제가 있으며, 사회성이 부족하고, 음주 문제가 있고, 구직 동기와 학습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기능 수준이 높다면 그러한 상태를 ‘가장’해야 한다. 최대한 불쌍하게 보여야 하고, 최대한 무능력해 보여야 한다. 나는 화장한 채로 면담장에 출석하는 것도 눈치를 봐야 했다.

판정 결과 역시 ‘근로능력 있음’과 ‘근로능력 없음’이다. 어떤 사람은 유능하다는 판정을 받고, 어떤 사람은 무능하다는 판정을 받는다. 국가가 경증 장애인과 미등록 장애인에게 ‘이 사람은 무능한 사람’이라고 판정 내리고 낙인을 찍는 것과 같다.

이러한 현실을 바꾸고 싶었는데, 마침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 한국 2-3차 병합 심의가 올해 8월에 열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의 현실을 고발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되어 estas와 함께 ‘한국신경다양성연대’라는 이름으로 대안 보고서를 썼다. 대한민국의 현행 기초생활수급 제도가 경증 장애인과 미등록·법외장애인들을 고통스럽게 하는지 낱낱이 기록하려고 했다.

그러나 연대 보고서는 결과적으로 채택되지 못하였다. 보고서의 퀄리티가 좋지 않았던 것일까? estas가 독립 보고서도 썼고 연대 보고서도 써서 반려된 것일까? 기초생활수급 제도와 장애인권과의 상관관계를 제대로 논증하지 못했던 것일까? 보고서를 더 열심히, 성실히 써야 했다고 후회했다.

나는 estas의 인사들과 함께 위원들에게 보내는 로비문서를 작성했다. 그리고 활동능력평가기준 표를 번역해서 첨부했다.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기초수급 장애인들의 현실을 반영하고자 노력했다. 이 역시 이번 달에 나온 최종 권고에 아무것도 반영되지 않았다.

한 장애계 인사의 말씀이 떠올랐다. “장애인권리협약이 권고가 제대로 받아들여지지도 않고 생활을 더 낫게 해주지 못하는데 뭣하러 하느냐?” 부정하고 싶었지만 이 말이 현실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더 절망적인 것은 다음 심의가 10년 후에나 개최된다는 소식이었다. 장애인권리위원회의 ‘기초수급 장애인 패싱(passing)’으로 인해 기초생활수급 장애인의 권리 보장은 10년 뒤로 ‘미뤄졌다’. 그리고 나 역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유능했다면 권고에 반영되었을지도 모르니 말이다.

앞으로 10년 남았다. 그동안 장애계는 장애인의 인권을 개선시킬 수 있는 다양한 채널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권리협약 심의가 중요하기는 하지만, 거기에 의존하지 않고도 장애인의 현실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다음 심의만 기다리기에 10년이라는 시간은 너무 길고 소중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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